[원문] 子曰禘自旣灌而往者는 吾不欲觀之矣로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禘제사에 이미 강신주를 따른 뒤부터는 내가 보고자하지 않는다.
[註] 趙伯循曰禘는 王者之大祭也라 王者旣立始祖之廟하고 又推始祖所自出之帝하야 祀之於始祖之廟하고 而以始祖配之也라 成王은 以周公이 有大勳勞라하여 賜魯重祭라 故得禘於周公之廟하고 以文王으로 爲所出之帝而周公配之라 然非禮矣라 灌者는 方祭之始에 用鬱鬯之酒하야 灌地以降神也라 魯之君臣이 當此之時하야는 誠意未發하야 猶有可觀이나 自此以後엔 則浸以懈怠하야 而無足觀矣라 蓋魯祭非禮니 孔子本不欲觀이로대 至此而失禮之中에 又失禮焉이라 故發此歎也라
[註解] 조백순이 말했다. 禘는 왕 노릇 하는 자(天子)의 큰 제사이다. 천자가 이미 시조의 사당을 세우고 또 시조의 所自出에서 제왕을 미루어서 시조의 묘에 제사지내고 그것을 가지고 시조를 배향(配享)하였다. 성왕은 주공이 큰 공로가 있다고 하여 노나라에 중요한 제사를 주었다. 그러므로 주공의 묘에 禘제사를 할 수 있고 문왕으로부터 나온 곳의 임금을 삼아서 주공을 배향한 것이다. 그러나 예가 아닌 것이다. 灌이라는 것은 바야흐로 제사가 시작할 때에 울창의 술을 사용하여서 땅에 부어 그것을 가지고 강신을 하는 것이다. 노나라의 군신들이 이 때를 당하여서는 誠意가 아직 흩어지지 않아서 볼만 한 것이 있었으나 이로부터 이후에는 점점 게을러져서 볼만 한 것이 없었다. 대개 노나라의 제사는 예가 아니니 공자께서 본래 보고자 하지 않았으나 여기에 이르러서 예를 잃은 가운데에 또 예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탄식을 발한 것이다.
*시조의 所自出에서 제왕을 미룬다는 것은 시조로부터 선조들을 王이나 公등으로 관직을 부여해 함께 모신다는 의미이다. 『사략언해』에 보면 주 무왕이 은나라를 몰아내고 주나라를 세웠을 때 주나라 시조인 후직과 더불어 선조들을 높은 작위에 봉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왕으로부터 나온 곳의 임금을 삼았다는 말은 문왕으로부터 선조들을 모셨다는 말이다.
[註] ○謝氏曰夫子嘗曰我欲觀夏道라 是故之杞而不足證也요 我欲觀商道라 是故之宋而不足證也라하고 又曰我觀周道니 幽厲傷之라 吾舍魯何適矣리오 魯之郊禘는 非禮也요 周公其衰矣라하니 考之杞宋에 已如彼하고 考之當今에 又如此하니 孔子所以深歎也라
* “是故之杞而不足證也”와 “是故之宋而不足證也”의 ‘之’는 모두 ‘가다’의 뜻이다.
[註解] ○사씨가 말했다. 공자께서 일찍이 내가 하나라의 도를 보고자 하였으므로 기나라에 갔으나 증거가 부족하였고, 내가 상나라의 도를 보고자 하였으므로 송나라에 갔으나 증거가 부족하였다고 하시고 또 말씀하셨다. “내가 주나라의 도를 보니 유왕과 려왕이 그것을 상하게 하였다. 내가 노나라를 버리고 어디로 가리오 노나라의 郊제사와 禘제사는 예에 어긋나는 것이고 주공의 도가 쇠하였다”고 하시니 송나라와 기나라를 상고함에 이미 저것과 같고, 지금을 상고함에 또 이것과 같으니 공자께서 이 때문에 깊이 탄식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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