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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하고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십오 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註] 古者에 十五而入太學이라 心之所之를 謂之志라 此所謂學은 大學之道也니 志乎此則念念在此하야 而爲之不厭矣리라

*卽은 則과는 다르게 ‘은’토만 붙일 수 있다. 여기서는 나아가다의 뜻으로 쓰인다.

[註解] 예전에 십오 세가 되면 태학에 들어갔다. 마음이 가는 바를 志라고 이른다. 이 이른바 學이라는 것은 대학의 도에 나아가는 것이니 여기에 뜻을 두면 생각마다 여기에 있게 되어 학문을 싫어하지 않게 된다.

[원문] 三十而立하고

[해석] 서른에 자립하고

[註] 有以自立則守之固하야 而無所事志矣리라

[註解] 자립할 수 있으면 뜻 지키기가 견고하여 뜻을 일삼는 바가 없다.

[원문] 四十而不惑하고

[해석] 사십 세에 미혹되지 않고

[註] 於事物之所當然에 皆無所疑則知之明하야 而無所事守矣리라

[註解] 사물의 당연한 바에 모두 의심하는 바가 없으면 앎이 분명하여서 지킴을 일삼는바가 없다.

[원문] 五十而知天命하고

[해석] 오십 세에 천명을 알고

[註] 天命은 卽天道之流行하야 而賦於物者니 乃事物所以當然之故也라 知此則知極其精而不惑을 又不足言矣리라

*流行은 특정한 행동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짐. 또는 그런 사회적 동조현상. 여기서는 천도가 널리 퍼졌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註解] 천명은 천도가 유행하여서 사물에 부여된 것이니 곧 사물에 당연한 소이이다. 이것을 알면 앎이 그 정밀함을 다하여서 의혹되지 않음을 족히 말할 것이 없다.

[원문] 六十而耳順하고

[해석] 육십 세에는 귀로 들으면 순화되었고

[註] 聲入心通하야 無所違逆이니 知之之至하야 不思而得也라

*知와 知之는 ‘앎’과 ‘안다는 것’ 정도의 차이이다.

[註解] 소리가 들어오면 마음이 통하여서 어기는 바와 거스르는 바가 없으니 아는 것이 지극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게 된다.

[원문] 七十而從心所欲하야 不踰矩호라

[해석] 칠십 세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

[註] 從은 隨也라 矩는 法度之器니 所以爲方者也라 隨其心之所欲而自不過於法度니 安而行之하야 不勉而中也라

[註解] 從은 따른다는 뜻이다. 矩는 법도를 재는 기구이니 모난 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스스로 법도를 벗어나지 않으니 편안하게 그것을 행하여서 힘쓰지 않아도 적중하는 것이다.

[註] ○程子曰孔子는 生而知者也로대 言亦由學而至라는 所以勉進後人也라 立은 能自立於斯道也라 不惑은 則無所疑矣요 知天命은 窮理盡性也요 耳順은 所聞皆通也요 從心所欲不踰矩는 則不勉而中矣라 又曰孔子自言其進德之序如此者는 聖人이 未必然이요 但爲學者立法하야 使之盈科而後進하고 成章而後達耳라

*맹자 진심上 24장 참조. “流水之爲物也 不盈科면 不行하나니 君子之志於道也에도(에) 不成章이면 不達이니라

[註解]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공자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배움으로 말미암아 이르렀다는 말은 후인을 노력하여 나아가게 하려는 까닭이다. 立은 이 도에 자립하는 것이다. 不惑은 의혹하는바가 없는 것이요 知天命은 이치를 궁구하여 본성을 다하는 것이요 耳順은 듣는 바를 모두 통한다는 것이요 從心所欲不踰矩는 힘쓰지 않아도 적중하는 것이다. 또 말하기를 공자께서 스스로 그 덕에 나아가는 순서를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성인이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요 단지 배우는 자들을 위해 법을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웅덩이를 채운 뒤에 나아가게 하고 문장을 이룬 이후에 통달하게 한 것이다.

[註] 胡氏曰聖人之敎亦多術이라 然其要는 使人不失其本心而已라 欲得此心者는 惟志乎聖人所示之學하야 循其序而進焉하야 至於一疵不存하고 萬理明盡之後則其日用之間에 本心瑩然하야 隨所意欲이라도 莫非至理니 蓋心卽體요 欲卽用이며 體卽道요 用卽義하야 聲爲律이요 而身爲度矣라 又曰聖人이 言此하야 一以示學者當優游涵泳이요 不可躐等而進이며 二以示學者當日就月將이요 不可半途而廢也라

[註解] 호씨가 말했다. 성인의 가르침이 또한 방법이 다양하다. 그러나 그 요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본심을 잃지 않게 할 뿐이다. 이 마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오직 성인이 보여준 바의 학문에 뜻을 두어서 그 순서를 따라서 거기에 나아가서 하나의 허물도 존재하지 않는데 이르고 온갖 이치를 분명히 다한 뒤에는 그 일상생활 사이에 본심이 밝게 빛나서 뜻하는 바와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더라도 지극한 이치가 아님이 없으니 이렇게 되면 마음은 체이고 욕망은 용이며 체는 도이고 용은 의여서 소리는 음율이 되고 몸은 척도가 된다. 또 말하기를 성인이 이러한 말은 첫째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여유롭게 오랜 시간 공부하고 단계를 넘어서 나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며 두 번째는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날로 나아가고 달로 나아가서 길의 중간에서 그만둘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註] 愚謂호니 聖人은 生知安行하야 固無積婁之漸이라 然其心에 未嘗自謂已至此也라 是其日用之間에 必有獨覺其進而人不及知者리라 故因其近似以自名하야 欲學者以是爲則而自勉이요 非心實自聖而姑爲是退託也라 後凡言謙辭之屬은 意皆放此라

[註解] 내가(주자) 생각해보니 성인은 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하야 누누이 점차 쌓아감이 업다. 그러나 그 마음에 일찍이 스스로 이미 이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상생활 사이에 반드시 나아가서 홀로 깨닫는 것이 있지만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유사한 근거로써 스스로 이름 하여 이것을 법칙삼아 스스로 힘쓰게 한 것이요 마음에 실제로 스스로 성인이라고 하면서 임시방편으로 이를 위해 겸손하게 말한 것은 아니다. 뒤에 무릇 겸손한 말씀에 속하는 것은 뜻이 모두 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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