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子曰參乎아 吾道는 一以貫之니라 曾子曰唯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아 나의 도는 한 가지 理가 그것을 가지고 만사를 꿰뚫는다. 증자가 말씀하셨다. 네!
*唯는 여기서는 ‘공손히 대답하는 말’로 해석한다.
*一以貫之는 대중적으로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문법적으로 앞의 뜻이 되려면 ‘以一로 貫之라’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앞의 뜻은 옳지 않다.
[註] 參乎者는 呼曾子之名而告之라 貫은 通也라 唯者는 應之速而無疑者也라 聖人之心이 渾然一理而泛應曲當하야 用各不同이니 曾子於其用處에 蓋已隨事精察而力行之로대 但未知其體之一爾라 夫子知其眞積力久하야 將有所得이라 是以呼而告之라 曾子果能黙契其指하야 卽應之速而無疑也라
[註解] 參乎는 증자의 이름을 불러서 고하신 것이다. 貫은 통한다는 뜻이다. 唯는 빨리 응답하여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성인의 마음이 혼연히 하나의 이치여서 널리 응하고 곡진히 마땅하여서 그 쓰임이 각기 다르니 증자께서 그 쓰이는 곳에 이미 일을 따라 정밀히 살피고 힘써 행하였지만 다만 그 체가 한가지임을 알지 못하였을 뿐이다. 공자께서 그가 진실로 쌓고 힘쓰기를 오래해서 장차 체득한 바가 있음을 아셨다. 이 까닭에 불러서 고하신 것이다. 증자가 과연 그 뜻을 묵묵히 알아서 즉시 빨리 대답하여 의심이 없었던 것이다.
[원문] 子出커시늘 門人이 問曰何謂也잇고 曾子曰夫子之道는 忠恕而已矣니라
[해석] 공자께서 나가시거늘 문인들이 물었다. “무엇을 이르신 것입니까?” 증자가 말씀하시기를 “선생님(공자)의 도는 충과 서일뿐이다.”
[註] 盡己之謂忠이요 推己之謂恕라 而己矣者는 竭盡而無餘之辭也라 夫子之一理渾然而泛應曲當은 譬則天地之至誠無息하야 而萬物各得其所也라 自此之外에 固無餘法이요 而亦無待於推矣라 曾子有見於此而難言之라 故借學者盡己推己之目하야 以著明之하야 欲人之易曉也라 蓋至誠無息은 道之體也니 萬殊之所以一本也라 萬物이 各得其所者는 道之用也니 一本之所以萬殊也라 以此觀之면 一以貫之之實을 可見矣라 或曰中心이 爲忠이요 如心이 爲恕라하니 於義亦通이라
[註解] 자기 마음을 다하는 것을 忠이라 이르고 자기 마음을 미루는 것을 恕라고 이른다. 而已矣라는 것은 다하여서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공자의 한 理가 혼연하여서 널리 응하고 곡진히 마땅함은 비유하자면 천지가 지극히 진실 되고 쉼이 없어서 만물이 각각 제자리를 얻는 것이다. 이로부터 바깥에(이 밖에는) 진실로 남은 방법이 없고 미루어 확대함에 기다릴 것이 없다. 증자가 여기에서 본 것이 있으나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들에게 자기 마음을 다하고 자기 마음을 미루는 조목을 빌어서 그것을 가지고 분명하게 드러내어 남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한 것이다. 대개 지극히 성실하여 쉼이 없다는 것은 도의 체이니 온갖 다른 것이 하나의 근본이 되는 까닭이다. 만물이 각각 제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도의 用이니 하나의 근본이 온갖 다른 것으로 나뉘는 까닭이다. 이것으로써 관찰하면 하나의 이치가 온갖 다른 것(萬殊)을 꿰뚫는 실제를 볼 수 있다. 혹자가 말하기를 中心이 忠이 되고 如心이 恕가 된다 하니 뜻에 또한 통한다.
*易은 소주에 去聲이므로 ‘쉬울 이’로 해석한다.
[註] ○程子曰以己及物은 仁也요 推己及物은 恕也니 違道不遠이 是也라 忠恕는 一以貫之니 忠者는 天道요 恕者는 人道라 忠者는 無妄이요 恕者는 所以行乎忠也라 忠者는 體요 恕者는 用이니 大本達道也라 此與達道不遠異者는 動以天爾라 又曰維天之命이 於穆不已는 忠也요 乾道變化에 各正性命은 恕也라 又曰聖人敎人에 各因其才하니 吾道一以貫之를 惟曾子爲能達此니 孔子所以告之也라 曾子告門人曰夫子之道는 忠恕而已矣라하니 亦猶夫子之告曾子也라 中庸所謂忠恕達道不遠은 斯乃下學上達之義라
[註解] ○정자가 말씀하셨다. 나의 마음으로써 사물에 미침은 仁이고 나의 마음을 미루어 사물에 미침은 恕이니 《중용》의 충과 서는 도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忠恕違道不遠)는 것이 이것이다. 충과 서는 하나의 이치가 萬殊를 관통하니 충은 하늘의 도이고 서는 사람의 도이다. 충은 진실무망(眞實無妄)한 것이고 서는 忠을 행하는 까닭이다. 충은 體이고 서는 用이니 큰 근본(仁義禮智)과 보편적인 도(達道)이다. 이것과 “違道不遠”이 다른 것은 天으로써 움직이기 때문이다. 또 말하기를 하늘의 명이 아! 심원하여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충이고 乾道가 변화함에 각각 성명(性命)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서이다. 또 말하기를 성인이 사람을 가르침에 각각 그 재질에 기인하니 나의 도가 一以貫之함을 오직 증자가 능히 이것에 통달하였으니 공자께서 고하신 까닭이다. 증자가 문인들에게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 따름이다”고 하였으니 또한 공자께서 증자에게 고하신 것과 같다. 중용의 이른바 충과 서는 도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고 하는 것은 이에 곧 아래로 人事를 배우고 위로는 天理(또는 天文)에 통달하는 뜻이다.
*於는 여기서 감탄사 발어사 등의 뜻으로 ‘오’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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