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원문과 주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자면, 사서(四書) 영인본의 경우 세로쓰기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원문을 맨 위에서부터 쓰고 주는 원문보다 한칸 아래에서 시작이 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 또한 주를 표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맹자집주서설에서는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 없는 것을 원문으로 ○이 붙은 것을 주로 표기하였다. 또한 현대 중국어의 뼈대가 되는 송대 무렵의 백화문이 일부 보이는 듯하여 현대 중국어 사전을 참고하였다.
[원문] 史記列傳에 曰孟軻는 騶人也니 受業子思之門人이라 道旣通하야 游事齊宣王이나 宣王이 不能用하며 適梁이나 梁惠王이 不果所言은 則見以爲迂遠하고 而闊於事情이라
[해석] 사기 열전에 이르기를 "맹가는 추나라 사람이니 자사의 문인에게서 수업하였다." 도가 이미 통하여서 제나라 선왕을 섬기러 갔으나 선왕이 능히 쓰지 않았으며 양나라로 갔으나 양나라 혜왕이 말한 바를 이루지 않음은 (맹자의 말이) 멀리 돌아가는 것이고 사정에 넓다고 여겨진 것이다.
*見은 여기서 피동을 나타내는 표시인 듯하다.
*迂遠은 둘다 멀다의 뜻인데, '멀리 돌아가다', '세상 물정을 모른다' 정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闊於事情은 직역하여 '사정에 넓다'고 한 것인데, 현실에 가깝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원문] 當是之時하야 秦用商鞅하고 楚魏用吳起하며 齊用孫子田忌호니 天下方務於合從連衡하야 以攻伐爲賢이어늘 而孟軻乃述唐虞三代之德이라 是以所如者不合일새 退而與萬章之徒로 序詩書하고 述仲尼之意하야 作孟子七篇이라
[해석] 이 때를 당하여 진나라에서 상앙을 등용하고 초나라와 위나라에서는 오기를 등용하였으며 제나라는 손자와 전기를 등용하니 천하가 바야흐로 합종책과 연횡책에 힘써 공격과 정벌을 어진 것으로 여겼는데 맹자가 이에 요임금과 순임금, 하은주 삼대의 덕을 서술하였다. 이 까닭에 가는 곳마다 (뜻이) 합치되지 않자 물러나서 만장(萬章)의 무리와 더불어 시경과 서경을 서술하고 공자의 뜻을 기술하여 맹자 칠편을 지었다.
*合從連衡은 합종책과 연횡책을 말한다.
*唐虞는 중국 고대사에서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전설적인 두 임금이다. 제요도당씨(帝堯陶唐氏)에서 唐과 제순유우씨(帝舜有虞氏)의 虞를 따서 당우(唐虞)라고 표현하였다.
*如는 마치 ~인듯하다, ~와 같다 등의 의미로 자주 쓰이는데 여기서는 가다(go)의 의미로 쓰였다.
[원문] 韓子曰堯以是傳之舜하고 舜以是傳之禹하고 禹以是傳之湯하고 湯以是傳之文武周公하고 文武周公傳之孔子하고 孔子傳之孟軻하며 軻之死하얀 不得其傳焉이라 荀與揚也는 擇焉而不精하며 語焉而不詳이라
[해석] 한유가 말했다. “요임금이 이것으로써(왕도정치로써) 순임금에게 전하고 순임금이 왕도정치로써 우임금에게 전하고 우임금이 왕도정치로써 탕임금에게 전하고 탕임금이 왕도정치로써 문왕, 무왕, 주공에게 전하고 문왕, 무왕, 주공이 공자에게 전하였고 공자가 맹자에게 전하였으며, 맹자가 죽어서는 그것을 전할 수 없었다. 순자와 양웅은 (왕도정치를) 택하였으나 정밀하지 못했으며 말이 상세하지 못했다.
*실제 중국사를 보면 요임금에서 우임금까지는 직접적으로 대를 이은 것이지만, 우와 탕, 탕과 문왕 사이에는 시간의 격차가 있어 직접적으로 전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유가의 도통(道統)을 이은 것으로 볼 뿐이다.
[註] ○又曰孟氏는 醇乎醇者也요 筍與揚은 大醇而小疵라
[註解] ○또 말했다. 맹씨는 순수하고 순수한 사람이고 순자와 양웅은 크게 순수하지만 작은 하자(瑕疵)가 있다.
[註] ○又曰孔子之道大而能博하니 門弟子不能徧觀而盡識也라 故學焉而皆得其性之所近이러니 其後離散하야 分處諸侯之國하고 又各以其所能으로 授弟子호대 源遠而末益分하니 惟孟軻師子思호대 而子思之學은 出於曾子로대 自孔子沒로 獨孟軻氏之傳이 得其宗이라 故求觀聖人之道者는 必自孟子始라
[註解] ○또 말했다. 공자의 도는 크고 능히 넓으니 문하의 제자들이 능히 두루 보고 다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공자에게서) 배웠으나 모두 그 성품의 가까운 것을 얻었으니 그 뒤에 흩어져서 나누어 제후의 나라에 나누어 처하고 또 각기 그 능한 바로써 제자에게 전수(傳授)하였으되 근원이 멀어지고 말단이 더욱 나뉘었다. 오직 맹자가 자사에게 배웠으되 자사의 학문은 증자로부터 나왔으니 공자가 돌아가심으로부터 유독 맹자의 전함이 그 종통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도를 보기를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맹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註] ○又曰揚子雲曰古者에 楊墨이 塞路어늘 孟子辭而闢之廓如也라 夫楊墨行이면 正道發하나니 孟子雖賢聖이나 不得位하야 空言無施하며 雖切이나 何補리오 然賴其言이라 而今之學者는 尙知宗孔氏崇仁義하며 貴王賤霸而已나 其大經大法이 皆亡滅而不救하고 壞爛而不收하니 所謂存十一於千百이 安在其能廓如也리오 然向無孟氏則皆服左衽이요 而言侏離矣리라 故愈嘗推尊孟氏하야 以爲功不在禹下者爲此也라
[註解] ○또 말했다. 양자운이 “옛적에 양주와 묵적이 정도(正道 혹은 儒道)를 막거늘 맹자가 말하여서 물리쳐서 (유도를) 넓히셨다”고 말했다. 양주와 묵적의 도가 행해지면 正道가 막히니 맹자가 비록 어질고 성스러우나 지위를 얻지 못하여서 빈 말로 베풀 수 없으며 비록 절실하나 무엇을 보태겠는가? 그러나 그 말을 믿어서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오히려 공자를 종장(宗長)으로 하고 인의를 숭상하며 왕도정치를 귀하게 여기고 패도정치를 얕게 보는 것을 알 뿐이지만 그 큰 줄기와 큰 법이 모두 없어지고 소멸하여 구할 수 없고 무너지고 문드러져서 거둘 수 없으니 이른바 1000과 100에 10과 1이 남아있음이 그것을 능히 넓혔다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지난날 맹자가 없었다면 의복이 모두 좌임이 되고 오랑캐의 말을 썼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한유) 일찍이 맹자를 높이 받들어서 공로가 우임금의 아래에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괴란(壞爛) : 무너지고 문드러짐(네이버 국어사전)
*向에는 여러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지난번’의 뜻으로 쓰였다.
*주리(侏離) : 1.뜻이 통하지 아니하는 만이(蠻夷)의 소리. 2.중국 서쪽 오랑캐의 음악. (네이버 국어사전)
*以爲는 以A爲B의 형식으로 “A로써 B를 삼다, 여기다”의 뜻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여기서는 말하다, 생각하다 정도의 의미로 쓰인 듯하다.
[원문] 或이 問於程子曰孟子를 還可謂聖人否잇가 程子曰未敢便道他是聖人이라 然學은 已到至處라
[해석] 혹자가 정자에게 물었다. “맹자를 다시 성인이라고 이를 수 없겠습니까?” 정자가 말했다. “감히 편하게 다른 부분이 성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배움은 이미 지극한 곳에 이르렀다.”
*道는 말하다의 뜻으로 쓰였다.
*是는 현대 중국어의 용례와 유사하게 ‘~이다’로 쓰인 듯하다.
[註] ○程子又曰孟子有功於聖門을 不可勝言이로대 仲尼는 只說一箇仁字하고 孟子는 開口便說仁義하며 仲尼只說一箇志어늘 孟子는 便說許多養氣出來하니 只此二字의 其功甚多라
[註解] ○정자가 또 말했다. “맹자가 성문(聖門)에 공이 있음을 이루 다 말할 것이 없는데 공자는 다만 하나의 仁이라는 글자만 말하고 맹자는 입을 열면 곧 인의를 말했으며 공자는 다만 하나의 뜻을 말했는데 맹자는 곧 허다한 양기(養氣)가 오고 가는 것을 말하였으니 다만 이 두 글자의 그 공이 심히 많다.”
*養氣는 아마도 맹자 본문에 나오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註] 又曰孟子有大功於世는 以其言性善也라
[註解] 또 말했다. 맹자가 세상에 큰 공이 있음은 그가 성선을 말했기 때문이다.
[註] ○又曰孟子의 性善養氣之論은 皆前聖所未發이라
[註解] ○또 말했다. “맹자의 성선과 양기의 이론은 모두 앞의 성인이 아직 발하지 못한 것이다.
[註] ○又曰學者全要識時니 若不識時면 不足以言學이요 顔子陋巷自樂은 以有孔子在焉이라 若孟子之時는 世旣無人이니 安可不以道로 自任이리오
[註解] ○또 말했다. 배우는 자들은 온전히 때를 알고자하니 만약 때를 알지 못하면 족히 학문을 말할 수 없음이요 안자가 누추한 골목에서 스스로 즐거워한 것은 공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맹자의 시대는 세상에 이미 인물이 없으니 어찌 가히 도로써 스스로 맡지 않았겠는가?
[註] ○又曰孟子는 有些英氣하니 才有英氣면 便有圭角이니 英氣甚害事라 如顔子는 便渾厚不同하니 顔子는 去聖人이 只毫髮間이요 孟子는 大賢이니 亞聖之次也라 或曰英氣見於甚處잇가 曰但以孔子之言으로 比之면 便可見이니 且如氷與水精이 非不光이로대 比之면 玉은 自是有溫潤含蓄氣象이요 無許多光耀也라
[註解] ○또 말했다. “맹자는 약간의 영기(英氣)가 있었으니 조금의 영기가 있으면 곧 규각(圭角)이 있으니 영기는 심히 일에 해롭다. 안자와 같은 사람은 곧 순수하고 두터워서 (이와) 같지 않으니 안자는 성인의 떠남이 단지 털끝만한 사이였고 맹자는 크게 어질었으니 안자(亞聖)의 다음이다.” 혹자가 말했다. “영기가 어느 곳에서 볼 수 있습니까?” (정자가) 말했다. “다만 공자의 말로써 비교하면 곧 볼 수 있으니 또한 예컨대 얼음과 수정이 빛나지 않는 것이 없지만 그것을 비교하자면 옥은 저절로 따뜻하고 윤택하고 함축하는 기상을 가지고 있고 허다한 빛 무리가 없는 것과 같다.
[원문] 楊氏曰孟子一書는 只是要正人心이니 敎人存心養性과 收其放心하고 至論仁義禮智하얀 則以惻隱羞惡辭讓是非之心으로 爲之端하고 論邪說之害엔 則曰生於其心하며 害於其政이라하고 論事君엔 則曰格君心之非하야 一正君而國定이라하니 千變萬化只說從心上來라 人能正心則事無足爲者矣라 大學之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其本이 只是正心誠意而已니 心得其正然後에 知性之善故로 孟子遇人에 便道性善이어늘 歐陽永叔이 却言聖人之敎人에 性非所先이라하니 可謂誤矣라 人性上에 不可添一物이니 堯舜所以爲萬世法이 亦是率性而已니 所謂率性은 順天理是也요 外邊에 用計用數면 假饒立得功業이라도 只是人欲之私니 與聖賢作處는 天地懸隔이라
[해석] 양씨가 말했다. “맹자의 한 책은 다만 이 人心을 바르게 하려는 요체이니 가르치는 사람들이 마음을 보존하고 성품을 기름과 그 방심을 거두고 인의예지를 논하는데 이르러서는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마음으로 단서를 삼고 사특한 말의 해악을 논함에는 ‘그 마음에서 생겨나며 그 정치에 해를 끼친다’고 하고 임금 섬기는 것을 논함에 ‘임금 마음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한번 바로잡으면 나라가 정해진다’고 하였으니 천 가지, 만 가지의 변화가 다만 마음을 따라서 올라옴을 말한 것이다. 사람이 능히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있으면 일이 족히 할 것이 없다.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그 근본이 다만 정심과 성의에 있을 뿐이니, 마음이 그 바름을 얻은 그러한 뒤에야 본성이 선함을 알 수 있으므로 맹자가 사람을 만남에 곧 성선을 말한 것인데 구양영숙(歐陽永叔)이 ‘성인이 사람을 가르침에 성(性)은 먼저 할 바가 아니었다’고 하니 가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 위에 가히 하나의 사물(事物)을 둘 수 없으니 요순이 만세의 법이 되는 까닭도 또한 이 본성을 따랐을 뿐이니, 이른바 본성을 따른다는 것은 천리를 따르는 것이 이것이다. 그 밖에 계책을 쓰고 술수를 쓰면 설사 공로와 업적을 얻어 세운다하더라도 단지 이는 인욕의 사사로움이니 성현과 더불어 하는 일은 천지와 같은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上來는 현대 중국어에서 “올라오다”의 의미를 가진다.
*假饒는 현대 중국어로 “설사 …라 하더라도”, “만약. 만일. 가령.”의 뜻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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